처음부터 돌아올 길은 없었다.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에 얽힌 10가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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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1954년-1957년 11월 3일)는 러시아(소비에트 연방)이 1957년 11월 3일 발사한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실린 암컷 개이다. 지구 궤도를 선회한 최초의 동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의 일이다.

그 성공이 인류 사상 최대급의 위업에 대한 이치를 심어줬다. 하지만 라이카는 개이므로 이러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몇주 동안은 힘들 무서운 시간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라이카는 혼란스럽게 떨고 있었다. 역사가 좀 더 진보했더라면 라이카는 살아서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들개였던 라이카는 결국 살아 돌아올 수 없었다.

 

10. 들개에서 뽑혔다

우주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라이카는 집이 없는 아이였다. 모스크바를 돌아다니는 잡종 개였다.

미국에서는 원숭이를 이용했으나 소련은 들개를 썼다. 훈련이 쉬웠기 때문이다. 또 우주의 가혹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완강함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들개 포획 팀이 결성됐다.

소련에 의해서 로켓에 실린 최초의 개는 라이카가 아니다. 그 전에 ‘아리비나’라는 개가 로켓으로 지구 궤도 중간까지 올라갔다가 무사히 귀환했다.

또 ‘무슈카’라는 개는 생명 유지 장치의 실험에 이용됐다. 무슈카도 라이카와 마찬가지로 들개이다.하지만 그 아이도 우주 개발의 실험은 가혹했던 듯, 훈련을 받는 중에는 항상 떨며 먹이를 입에 대지 않았다.

 

9. 죽음을 알고 있었다

아리비나와 달리 라이카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재진입을 위한 장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자는 그녀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라이카는 지구 궤도에 며칠 머문 뒤 먹이에 담긴 약으로 안락사될 예정이었다.

소련 밖으로는 이 미션에 대해서 비난이 일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반대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데일리 미러는 “개는 죽는다. 우리는 도울 방법이 없다”라는 제목이 내걸렸다. 영국 동물 학대 방지 협회는 소련 대사관에 항의하도록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매일 오전 11시에 침묵을 하는 항의 활동도 이뤄졌다.

소련 정부는 왜 이렇게 비판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항의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성명에서 “러시아인은 개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학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이익 때문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이카는 미션의 참혹함 때문에 뽑혔는지도 모른다. 몇몇 소식통에 따르면 최초에 선택된 것은 아리비나였지만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제외됐다. 아리비나는 이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이카가 우주로 보내져 아리비나는  살아남았다.

 

8. 그 이유는 우주선 개발을 서두른 것

라이카의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래 계획은 살아 돌아오는 것이었다. 소련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추고 무사히 귀환시키겠다고 선전 했다.

그것이 변경된 것은 흐루시초프의 탓이다. 당시 소련의 제4대 최고 지도자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라이카의 우주 여행을 선전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완벽이 바람직했다. 그는 스푸트니크 2호를 열월 혁명의 40주년을 기념하여 발사를 계획하고 그 날짜에 맞추어 개발을 서둘렀다.

이렇게 당초 계획은 파기됐다. 연구자는 나머지 4주 만에 궤도에 생물을 보내는 우주선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에는 충분한 시간 필요했지만, 살아 귀환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보리스 체르토크는 이렇게 말했다.”로켓 기술로 발전하던 온갖 전통이 내팽개쳐 졌다. 2번째 인공 위성은 예비 설계는 커녕 어떤 종류의 설계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7. 케이지가 조금씩 좁은 것으로 바뀌면서 몇주를 보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세탁기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 안에 라이카가 뛰어다닐 공간도 없고 또한 그렇게 못하도록 한군데에 쇠사슬로 연결되어 앉거나 눕거나 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못 했다.

그 준비 때문에 라이카를 비롯한 개들의 케이지는 점점 좁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 폐소 공포증이라도 될 것 같은 환경에 20일 간 감금되다가 더 좁은 공간에 갇힌 것이다.

케이지 속의 개들은 변비에 걸렸고 변비 약을 투여하더라도 배변을 거부했다. 과학자가 배운, 개를 이 상황에 익숙해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기에 계속 가두며 자신들이 바깥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잊게 하는 것이었다.

 

6. 발사 전에 한 과학자의 집에 초대됐다

발사 전날 블라디미르 야트도프스키 박사는 라이카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그때까지 4주간, 라이카와 누구보다도 관련된 것이 그였다. 그가 들개 포획 팀을 이끌고 라이카를 잡아 훈련을 하고, 우주에 내보내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박사는 집에서 라이카를 아이와 놀게 했다. 라이카의 최후의 날 전날에 친절한 가족애를 느낀 개로서의 삶을 경험시키기 때문이었다.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남은 시간은 미미했기 때문”이라고 야트토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아침, 라이카는 로켓을 타고 우주로 발사되며,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박사는 발사장에 라이카를 데리고 가, 팀 동료와 함께 이별을 고했다.

“라이카를 컨테이너에 넣고 해치를 닫고, 모두 코에 키스를 해서 여행의 무사를 기원했다… 물론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다”라고 팀 중 한명이 후에 말했다.

 

5. 라이카는 떨고 있었다

그날, 라이카는 발사되지 않았다. 3일을 우주선에 갇힌 채 지상에 머물고 있었다. 이상이 발견되어, 수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차디찬 기온 속에 놓였다.

과학자들은 최대한의 돌보았다. 호스로 에어컨의 따듯한 바람을 넣어주고 야트토프스키 박사 팀도 늘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는 발사됐다.

우주선이 폭음을 울리며 우주로 오르는 바람에 라이카는 패닉에 빠졌다. 심박 수와 호흡수는 통상의 3배로 오르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다.

무중력이 되던 무렵, 라이카는 안정을 되찾았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생물이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대기권 밖에서 지구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심박 수는 떨어지면서 긴장이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지상에 있던 때의 심박 수는 넘긴 채였다

 

4. 비극적 죽음

미션 후 몇년간이나 소련은 라이카가 우주에서 살았다고 주장했다. 라이카는 지구 궤도를 며칠씩 떠돌다 마지막에는 약이 든 먹이를 먹고 편히 숨을 거둔 것이라고.

하지만 2002년에 진실이 드러난다. 과학자 중 한명이었던 Dimitri Malashenkov가 라이카의 죽음은 처절한 것이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라이카는 7시간만에 지구 궤도의 4바퀴 어느 시점에서 굉장한 고통 속 죽은 것이었다고 했다.

대충 만들어진 스푸트니크 2호의 온도 조절 시스템은 고장이었다. 안은 점점 더워지고, 바로 40도를 넘으며 지옥 같은 더위로 변했다. 무중력이 되고 침착하기 시작했던 라이카였는데 다시 혼란에 빠졌다.

지상에서의 훈련에서는 라이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 진정시키는 단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과학자들은 모니터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심박 수가 계속 높아지고, 이윽고 고동이 검출되지 않게 되었다.

 

3. 재돌입에서 조각조각

5개월 후, 지구를 2,570바퀴 돌은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의 관으로 되어 지구로 강하 했다. 그리고 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에 핏대를 남겼다. 미국에서는 약간의 혼란까지 발생하고 있다.

“1958년 4월 14일 자정을 넘기고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서 신뢰성의 높은 정보통에서 UFO목격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의 이야기는 하얀 밝은 물체가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보고에 따르면 갑자기 빛나더니 본체로부터 몇몇 작은 물체가 분리 여러 조각이 뒤 따랐다”고 했다.

UFO의 정체는 스푸트니크 2호에서 분리된 물체로 재돌입으로 흩어진 선체의 파편이다. 라이카와 선체는 지구로 향하며 뿔뿔이 흩어지고, 지상에 닿은 것도 없었다.

 

2.  무슈카가 뒤따르다

“컨트롤 개”로 지구에 남겨진 무슈카는 곧 라이카의 뒤따랐다. 무슈카는 우주선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식물이나 곤충 등 다양한 생물과 함께 스푸트니크 6호에 실렸다.

이는 제대로 귀환 할 수 있었지만 재돌입시에 우주선이 오작동으로  궤도를 벗어나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추락 지점은 예측 불가능했던 것으로 소련은 미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발표에서는 무슈카을 태운 우주선은 재돌입시에 타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는 폭파되었던 것이다. 비밀이 적국의 손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 과학자가 동물과 함께 폭파시킨 것이다.

 

1. 왜 귀환시키지 못했나? 죽음을 막지 못해 후회했던 멤버들

“시간이 흐를수록 미안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라고 팀의 일원이었던 Oleg Gazenko는 말했다.” 저렇게 해서는 안 됬다. 미션에서 그 개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

라이카의 우주 여행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생물이 우주에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먼저 간 것은 소련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라이카를 귀환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은 연구자 그룹에게도 일반인에게도 무겁게 짓누른다. 한 폴란드인 과학자는 그 죽음에 대해서”과학의 큰 상실인 것은 틀림없다”로 평가했다.

하지만 라이카는 세계에 우주 여행을 현실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미래의 우주 여행 길을 부추킨 것은 라이카이다.

라이카 이후 소련은 통산 13마리의 개를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 라이카는 생환하지는 못했지만, 이후의 개들  대부분은 지상으로 생환하였다.

그 후 4년도 채 되지않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도달, 무사 귀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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