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발명을 후회한 6명의 유명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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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발명이 문명의 발전과 기술 혁신에 기여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때로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 전쟁에 사용되고 그로인해 발명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과학자도 있다.

여기에서는 그런 6명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알프레드 노벨 – 다이너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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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은 불과 17세에 5개국어를 섭렵했다는 인물이다. 노벨상의 창시자로도 유명한데 그는 자신의 재산을 전 인류를 위해서 최대한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을 유언한 사람이다.

이러한 과학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의 원천이 된 것은 노벨의 가장 유명한 발명, 다이너마이트에 기인된 것이다. 이것은 그의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니트로글리세린 보다 안정된 것으로 개량한 건설용 폭약으로, 1867년에 특허 출원됐다. 노벨이 원한 것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정시킴으로써 전쟁을 끝내는 발명을 하는 것이었다. 결코 전쟁을 만들어 낸다는 건 아니었다.

“아마 우리 공장은 의회보다 빨리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 날, 양군의 부대는 순식간에 서로를 섬멸시키는 힘을 손에 넣는다. 모든 국민 국가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며, 군대를 해체함에 틀림 없다”

슬프게도 그의 꿈꾼 것은 무산됐다. 군대는 바로 다이너마이트의 무기로서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이것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한 프랑스 신문이 노벨의 죽음의 오보로 게재했을 때 그 제목은 “죽음의 상인, 죽다”이었다.

“지금까지는 없던 빠른속도로 사람들의 목숨을 뺏는 방법을 찾아내 대부호가 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사망했다”로 이어진 그 기사는 마치 축하 같은 논조였다. 이에 당황한 노벨은 사후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 의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노벨상 설립으로 이어졌다.

아서 갤스턴 – 고엽제(Agent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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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갤스턴은 미국의 식물학자로서 식물의 성장을 돕는 방법의 연구에 몸을 바친 인물이다. 트리 요오드 벤조 산(TIBA)이라는 콩의 개화를 앞당기는 호르몬 합성에 착수하지만 이는 농도를 높이는 낙엽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에 세균 무기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TIBA에 주목하고 여기서 화학 무기를 만들어 낸다. 오렌지제로 불렸던 그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로 사용됐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영향으로 무수한 기형 어린이들과 성인의 건강 피해까지 가져와 버린 것이다.

이를 후회했던 갤스턴은 1965년부터 1971년의 금지에 이르기까지 오렌지제 사용에 반대한 로비를 거듭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연구가 전쟁에 이용된 것을 후회했다. 뉴욕 타임스에는 이같이 말했다.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반드시 인류의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모든 발견은 선에서도 악도 아니며 건설적인 결과에도 파괴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의 탓이 아닙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 AK-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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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바란 것은 조국을 지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제공된 라이플의 비효율성과 위험성을 동료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일일이 확인하며 그것을 극복한 소총을 설계한다. 그 성과가 제식 명칭 “7.62mm Avtomat Kalashnikov-47”, 통칭 AK-47이다. 이에 대해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고 효과적인 전투 무기. 싸고 심플하여 각 나라에서는 닭 1마리보다 싸게 구입하다 ”

저비용, 경량, 가혹한 기후 조건에서도 운용 가능한 총을 개발함으로써 칼라시니코프는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고 그 자신 오랜 동안 그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테러리스트 등의 과격파들이 밀조하게 되며 심경에 변화가 온다. 그는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발명에 대해서는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농가의 사람들의 작업에서 쓸 수 있는 그래, 잔디 깎는 기계 따위를 만들면 좋았을텐데”

2009년 현재 1억 정이 생산된 AK-47이지만 절반은 밀조품이다. 칼라시니코프는 이것이 가져온 유혈을 안타까워하고 러시아 정교의 사제에게 다음과 같은 참회의 편지를 썼다.

“나의 가슴은 참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가슴의 통증도 그렇습니다. 답을 낼 수 없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저의 라이플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면 93세가 되는 농가의 아들, 정교의 충실한 신도인 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비록 그 죽음이 적이라 할지라도”

교회는 그를 용서, 그 헌신에 예를 다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칼라시니코프는 숨을 거두었다.

Kamran Loghman – 무기용 최루액 분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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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액 분사기는 원래 고결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최초로 개발된 것은 1960년. 미국 우편 배달원을 개의 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효과적임이 판명되면서 80년대에 FBI가 무기급의 위력을 가진 최루액 분사기 개발에 착수. 이렇게 Kamran Loghman이 발명한 올레오레진캡시컴(oleoresin capsicum)는 고추에 의한 매운것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화합물에서 추출된 비살상성 약제였다.

스코빌 값 530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매운 고추의 5배다. Kamran Loghman은 경찰이 올레오레진캡시컴을 사용하면 괴한에 피해를 주지 않고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명, 호흡 곤란, 기침 같은 그 효과는 모두 유효하고 또한 일시적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의 안전한 사용을 주장하여 채용한 나라의 경찰을 위해 사용시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이에 따라 훈련시킨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20년간 많은 생명을 구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평화적 시위에 대해서 나 이것이 사용된 장면을 본 그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를 점거하는 운동을 접하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경찰에서도 학생도 아닙니다. 자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주저앉았고, 그리고 화학 약품으로 되었습니다. 이런 사용법은 상궤를 벗어나고 있어 내가 아는 어떤 훈련이나 경찰의 방식과도 다릅니다. 80년대 초부터 90년대까지 4,000명의 경찰관을 지도하여 왔는데 이런 것은 처음입니다. 최루액 분사기의 개발 목적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설명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그의 발명품의 적절한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서 다대한 시간을 허비했다.

오빌 라이트 –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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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의 인류 첫 유인 비행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그 후 그들이 생애를 걸어 비행기의 평화적 이용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은 모르는 듯 하다. 둘 다 자신의 발명품이 설마 전쟁에 사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1909년 비행기를 미국군에 매각했을 때 그들이 예측한 사용법은 관측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을 살아남은 오빌은 비행기가 가져온 파괴를 목격한다.

“비행기가 날았던 전쟁 거리는 무서웠습니다. 다시 전쟁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5년 후, 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비행기는 정부에 그것이 갖는 파괴의 힘을 알리고 결국 평화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폭격기의 황폐를 다시 보면서 자신의 발명품이 이렇게 다루어지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죽음 직전 한 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그의 동생 윌버 라이트)는 어리석게도 세상에 긴 평화를 가져다 줄 만한 발명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틀렸습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 원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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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원폭을 개발한 것을 후회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하지만 원폭 개발에 종사한 것은 그 혼자는 아니다.”원폭의 아버지”로 알려진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거기에 있었다.

재능 있는 물리학자로서 핵의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힌두교의 정신에도 끌렸던 그는 천체 물리학, 핵 물리학, 양자 역학 등의 이론 물리학에 있어 미국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연구는 오늘날 블랙 홀로 불리는 현상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에 종지부를 찍은 수단으로서 주도적으로 원자 폭탄 개발을 하게 된다.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고 일류 물리학자를 스카우트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는 원폭을 자극하는 중성자 연쇄 반응을 연구했다. 그 성과가 인류 최초의 핵 실험”트리니티”이다. 그 폭발은 TNT폭약 18,000톤에 상당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이 실험을 잊지 못하고 한 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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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는 것을 깨달았다. 몇명이 웃고 몇몇은 울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입을 다문 채였다. 힌두교의 성전 ‘바가바드 기타 ‘의 한절에 이렇게 있습니다. ‘비슈누는 왕자에게 의무를 이행하도록 설득하는 무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우리는 저승 사자이며 세계의 파괴자이다’라고.

우리 모두가 각각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세상 같음도 유머도 과장도 지울 수 없는 인정미 없는 의미에서 물리학자는 죄를 짓고 알았습니다. 이를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 위력을 목격한 오펜하이머는 원폭의 국제적인 관리를 호소하게 되고 마침내 원자력 위원회 자문단에 취임한다. 원폭 개발에 강력히 반대했던 그가 있었지만 공산당과의 관계에서 정부는 기밀 유출을 우려, 결국 그의 주장은 거절되며 공직에서 추방된다. 그 뒤 스스로 초래한 결과를 잊지 않고 평생 동안 후회하게 된다.

여기에서 소개한 어느 과학자나 발명가도 그 발명품이 빚은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과학 기술이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전 네이비 실드의 크리스 퍼셀 씨가 네트워크 시대에 과학 기술의 진보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속도를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via:6 Scientists Who Regret Their Greatest Inv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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