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F] 일본의 천재 주식 고수 제이컴남 BNF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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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F는 누구인가

BNF는 1978년생 3월 5일에 태어난 일본의 자산가, 투자가이다.

동경 미나토구에 살고 있으며 본명은 비공개지만 코테가와 타카시로 알려져있다. BNF의 뜻은 일본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2채널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에서 따온것이다. 매스컴등에서는 제이컴남으로 불리우나 인터넷상에서는 BNF를 더 많이 사용한다.

내역

치바현 이치카와시 출신. 인터넷 주식을 시작했을 당시는 대학생이었다. 졸업까지 2학점을 남겨두고 있지만 중퇴한 상태이다.

2004년경 2채널에서 이름이 알려지던 투자가였지만 2005년에 제이컴 대량 오발주 사건으로 일반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출신지인 이치카와시에 2억엔(약20억원) 상당의 중고 2세대 저택을 구입. 부모에게는 토요타의 크라운 마제스타를 선물하고 미나토구에 4억엔(약40억원) 상당의 고층 맨션을 구입한 것 외에는 특별히 돈을 쓰지 않았고, 평소에는 자신의 트레이더 룸에 틀어 박혀 주식거래를 하였다.

2008년 한 방송에 출연했을때 취재자였던 쿠메 히로시에 의하면 일본의 식량자급률이 적은것에 대한 걱정을 하며 장래에 농업관련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니케이 평균 주가가 버블후 최저가를 경신했던 2008년 10월 시점에서도 210억엔(약2100억원)으로 자산을 늘렸다.

2008년 10월에는 아키하바라역 앞의 지상10층 지하1층의 상업 빌딩 ‘쵸무쵸무 아키하바라’의 소유권을 90억엔(약900억원)정도에 취득하였다. 빌딩으로 인한 수입을 원한 것이 아닌 자산 분산이 목적이었다.

2011년 아키하바라의 면적 800평방미터 지상6층 지하2층의 상업빌딩 ‘AKIBA 컬쳐즈 ZONE’을 170억엔(약1700억원)에 구입하였다. (여담이지만, 2007년경까지 이 빌딩을 소유했던 라오크스는 약60억엔(약600억원)에 판매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전에 구입했던 ‘쵸무쵸무 아키하바라’를 합치면 부동산 자산은 260억엔(약2600억원)이 된다.

이야기거리

BNF라는 닉네임은 미국의 투자가 Victor Niederhoffer에서 따온 것이다.

배부름에 의한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를 피하기 위해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컵라면을 먹는다.

쇼핑은 100엔샵을 이용한다.

2006년에 ‘가이아의 요아케’ 출연 당시 취미는 특히 없다고 말했지만, 2007년의 동경 스포츠의 인터뷰에서는 경마가 취미라고 말하여 마주(馬主)가 될 가능성을 높였다. 단, 마권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제이컴 사건 당시는 PHS를 연락기기로서 사용했었다.

주식 거래에 강한 의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눈 앞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무시하는 것은 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멈출수가 없다고 한다.

주가가 신경쓰여 해외 여행도 갈 수 없다고 한다.

타인의 돈을 운용하거나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 등이 될 생각은 전혀 없어서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과 회담했을 당시 자산 운용을 부탁받았지만 거절했다.

키타바타 타카오 경제 사무차장이 2008년 1월에 관련 단체에서 강연시 개인 투자가들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이야기 한 것에 대해 “강연에서 이야기 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의도는 모른다” 라고 말하며 “비판에는 적응되어서 ‘또야’ 라는 인상입니다” 라고 코멘트 했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을 매수하였지만 2월경에 도산. 이때의 거래로 7억엔(약70억원)의 손실을 내어 당시 사용하던 모니터 2대를 부셨다고 니케이 라디오에서 말했다.

2014년 12월 26일 아사히신문전자판의 보도에 의하면 고향납세로 미에켄 이가시에 1500만엔(약1.5억원)을 기부, 500만엔(약5000만원) 기부를 통하여 순금으로 된 수리검(24돈 350만원 상당)을 답례로 받았다.

제이컴주 대량 오발주 사건

BNF가 매스컴이나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12월 8일 신규 상장한 제이컴(인재 파견업)의 주식을 미즈호 증권의 남자 담당자가 ’61만엔 1주’를 ‘1엔 61만주’로 실수 입력하여 주식시장을 혼란시킨 사건부터였다.

이 사건으로 7,100주를 매수, 당일 시장에 1,100주를 팔고 남은 6,000주(당시 발행 주식의 41.38%였다)를 현금 결제(20억2,3500만엔)한 것이 대주주보고서에서 드러났다.

불과 10분 사이에 당시 BNF는 자산의 반에 가까운 돈을 투입하여 20억엔(약 200억원)을 번 것이고, 이것은 개인투자가가 번 최고액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평소처럼 냉정하게 거래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로 종종 잡지나 텔레비전의 취재에 얼굴을 가리고 나왔지만 2006년 2월 28일 도쿄의 닛케이 스페셜 ‘가이아의 요아케’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에는 일본 경제 신문 1면에 얼굴 사진이 실렸다. 또한 이후 출연에서는 본명이 나왔다.

2009년 12월 4일 미즈호 증권이 동경 증권 거래소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한 재판에서 도쿄 지방 재판소는 도쿄 증권 거래소에 107억엔1212만8058엔(약 1070억원)을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이사건에 대해 BNF는 “딱히 할말은 없습니다.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고, 개인이 오발주 해도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저 역시도 앞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쓸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2채널에서의 활동

2채널에서는 주로 ‘B・N・F ◆mKx8G6UMYQ’ 라는 닉네임으로 ‘오늘의 승패를 보고하는 스레’에서 활동했다. 첫 투고는 2004년 2월 5일이다. 자금력(당초 3억엔(약30억원) 전후)과 50종목을 동시에 매도하는 넓은 시야, 가격 변동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많은 2채널 개인 투자가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투고 내용은 매우 겸손하고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지도하였다. 처음에는 작은 금액으로 승부 결과를 투고하여 모두에게 칭찬받았지만 점점 투자금이 커지며 직장인의 연봉을 하루에 벌 정도로 되자 “가짜”, “사기”라며 일부 사람들이 의심하게 된다. 그의 고정 닉네임으로의 마지막 게시물은 2005년 4월 1일을 마지막으로 끊어졌지만 그 후 인터뷰에서 무명의 닉네임으로 가끔 투고하였다고 한다.

투자기법

스윙 트레이드의 자산 운용이 특기지만 PER등의 지표는 전혀 보지 않는다. 운용자산이 커지고 부터는 TOPIX Core30 (한국으로 치면 코스피200) 우량주를 중점으로 거래한다. 판단 기준은 “감각 보다는 익숙함. 총 가격 변동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 닛케이 평균과 선물 시장의 움직임을 본다” 라고 했다. 25일 이동 평균선의 괴리 비율을 바탕으로 한 저가 매수가 유명하다. 또 “오르지 않을 것 같으면 서둘러 손절매 하는게 좋아요”라고 빠른 손절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산 증가 경위

2000년 10월      164만엔 (약 1640만원) G01.png
2000년 말      280만엔 (약 2800만원) G01.png
2001년 말     6,100만엔 (약 6.1억원) G01.png
2002년 말     9,600만엔 (약 9.6억원) G01.pngG01.png
2003년 말   2억7,000만엔 (약 27억원) G05.png
2004년 말   11억5,000만엔 (약 115억원) G10.pngG10.pngG03.png
2005년 말      80억엔 (약 800억원) G100.pngG50.pngG10.png
2006년 말     157억엔 (약 1570억원) G100.pngG100.pngG100.pngG10.pngG03.pngG01.pngG01.png
2007년 말     185억엔 (약 1850억원) G100.pngG100.pngG100.pngG50.pngG10.pngG05.pngG01.png
2008년 말     218억엔 (약 2180억원) G100.pngG100.pngG100.pngG100.pngG10.pngG10.pngG10.pngG05.pngG01.png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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